1.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으나, 나는 여전히 혼자 틀어박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코딩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추석 안부 인사 알림이 쌓여가고 있었고, 그 중 한 명과 대화하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취직도 했으니, 너도 이제 취미도 만들고 연애도 하고 집도 구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어떠냐"
그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지인이기에 반문해봤다.
"OO님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그냥저냥 살지 뭐..~"
저걸 모두 가지면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뒤따라 나온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막상 본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군 전역 당시 독기를 있는대로 품고 있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이번 삶의 행복따윈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나왔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다보니 행복을 바라지 않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던 이들이 굉장히 많았었다.
단순 비유였으면 좋았으련만, 실제로 나의 행복을 멋대로 재단하며, 나의 사고가 잘못되었다며 바로 잡으려드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비록 소수였지만) 분명히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바라지 않았던 나는 지금 단 한 치의 불행조차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고,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던 이들은 대부분 본인 입으로 여전히 행복에 이르지 못했다고 답했다.
나보다 연봉도 높고, 취미도 있고, 연애도 잘 하고 있는 친구들은 확실히 높은 비율로 행복한 거 같긴 하던데, 막상 또 만나서 대화해보면 '인생의 목표가 사라져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라는 답변을 많이 받았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결함 가득한 궤변을 한 번 풀어보고 싶어져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미리 강조하지만, 실증적인 자료 같은 거 없이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간 글일 뿐이라, 진지하게 읽을 가치는 없는 글이다.
2.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물어보면 "행복"이라 답한다.
재차 한 번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일부는 얼버무리고, 어떤 이들은 자신만의 소박한 꿈을 이야기하곤 한다.
가장 많은 응답은 돈이었고, 가끔 감명깊게 본 영화라도 있었는지 일상의 소중함을 언급하기도 했다.
돈을 이야기한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다시 한 번 질문을 한다.
"얼마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역시나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돈 많은 백수, 가능한 많이...'
행복의 기준조차 정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function 행복한_삶() {
while (현재_상태 != "완전한_행복") {
현재_불행_요소 = 분석();
해결책 = 해결방법_찾기(현재_불행_요소);
실행(해결책);
현재_상태 = 측정(행복도);
}
return "행복 달성";
}
하여간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보편적인 행복의 알고리즘은 위와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논리적인 알고리즘이다.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서 불행한 요소를 찾아내고, 해결하고, 행복도를 측정하는 것.
그러나 이 알고리즘은 결코 종료되지 않는다.
3.
행복을 측정하려는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비교를 동반하게 되는데,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답이 단순히 "Yes"면 좋겠지만, 보통은 "Yes"와 "No"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려 시도한다.
- 비교 대상의 소환: 무엇과 비교해서? 어제의 나? 옆 동료? 이상적인 행복의 상태? 측정은 기준점을 필요로 한다.
- 척도의 생성: 1~10점까지의 행복도가 있다고 치자. 내가 7의 상태라고 했을 때 여기에 만족하면 좋겠지만, 뇌는 자동으로 3점의 부족함을 인식한다. 즉, 충만한 상태 뿐만 아니라 결핍까지도 가시화한다.
- 황금시대 사고: 영화 Midnight in Paris에는 "Nostalgia is denial - denial of the painful present...the name for this denial is golden age thinking - the erroneous notion that a different time period is better than the one one's living in - it's a flaw in the romantic imagination of those people who find it difficult to cope with the present"라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과거를 쉽게 미화하고 현재를 폄하하게 된다. 기억은 부정확하고, 비교는 공정하지 않다.
- 타인과의 비교: 타인의 겉모습과 자신의 속마음을 비교하여 불공정한 게임을 자처하는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
- 이상과의 비교: 환상은 단점이 없고, 현실은 수많은 단점이 존재한다. 환상의 기준을 타협하여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타협했다는 사실을 본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구조적으로 불만족을 만들어낸다.
10점이 아닌 평가는 "10점이 되지 못했다"라는 결핍의 인식이고, "어제보다 낫다"는 판단은 "내일은 더 나야아 한다" 혹은 "내일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압박으로 되돌아오며, "그 사람보다 못하다"는 비교는 열등감의 씨앗이 된다.
4.
while (현재_상태 != "완전한_행복") {
...
}
이 조건은 영원히 참(true)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행복"의 정의 자체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단순히 취업이 목표였던 백수가 운이 좋게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슷한 업계 사람들을 보니 자신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게 부러워서 더 높은 목표를 세운다.
어찌저찌 목표를 이뤘더니, 이번에는 SK 하이닉스에서 성과급 1억을 주었다고 한다.
분명 백수일 때는 취업만 해도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이 보이질 않는다.
목표가 달성될 때마다, 행복은 또 다시 미래로 밀려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실제로 돈을 충분히 벌만큼 벌고 만족하며 사는 사람을 본 적도 있고, 되려 삶의 목표가 없으면 일단 돈을 좇으라는 조언을 들은 적도 있는데 인상깊게 들었었다. 다만 그런 삶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다는 게 문제겠지만.)
이것은 단순 욕망의 확장이 아니다.
행복을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행복을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 투사하고, 현재를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목표는 본질적으로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는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전제를 필수적으로 깔고 시작하기에 가능한 사고 흐름이다.
5.
해결책 = 찾기(현재_불행_요소);
실행(해결책);
문제를 인식하고 실행하고 해결한 시점 사이에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정말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머무른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대부분 고통의 연속이라는 점에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배고픔에 시달리고, 승진을 위해 밤을 새우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현재 관계를 희생한다.
목표를 설정할 때 현재 상태의 모든 것을 가짐과 동시에 더 좋은 것들이 추가 되기만을 바라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행복을 위한 노력이 불행을 생산해내는 아이러니.
6.
알고리즘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명제를 "행복(H)을 목표(G)로 설정하면, H ≠ G가 항상 성립한다."라고 세워보자.
- 목표(G)는 정의상 "아직 도달하지 않은 상태"
- 따라서 G = "현재 상태가 아닌 것"이고, H는 현재 경험되는 것이므로 H = "현재 상태"
- 그러므로 H ≠ G (현재 ≠ 미래)
- 만약 H = G가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 G는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 새로운 목표 G'이 설정되고, 다시 H ≠ G'
이런,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았더니, 영원히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7.
만약, 당신이 정말 현실적인 행복의 기준을 세웠고, 마침내 이를 달성해낸 쾌거를 이룩했다고 치자.
if (현재_상태 == "완전한_행복") {
//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지(현재_상태);
}
아마 현재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
당신이 쌓아올린 업적과 관계, 자리, 가족 모든 것을 부조리한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function 행복_유지() {
while (true) {
현재_행복도 = 측정();
if (현재_행복도 < 목표_행복도) {
복구_시도();
}
if (현재_행복도 == 목표_행복도) {
현재_상태_고정();
}
}
}
평온과 자유, 행복과 안락과 같은 이상적인 상태는 언제나 자그마한 외부 자극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깨진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측정을 해야하고, 외부 요소를 차단하거나, 행복도가 낮아졌을 때 복구를 해야만 한다.
결국 다시 위에서 고안한 알고리즘에 스스로를 가두어야 하고, 다시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복구해낸다고 한들 다시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삶은 본질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몸은 늙고, 관계는 변하고, 환경은 달라진다.
당신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고, 영원히 젊게 사는 약물을 개발해낸다고 해도 "현재 상태 고정"은 불가능하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수반될텐데, 대다수가 그런 행위는 불행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8.
이번에는 정말 행복에 다다랐고, 큰 노력 없이도 행복이 유지되는 조건이라고 치자.
온 세상이 당신의 행복한 상태가 유지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에, 그 어떠한 외부 요소도 당신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럼 당신은 행복해질까?
if (모든_목표_달성 == true) {
의미 = null;
다음_행동 = null;
존재_이유 = ?
}
인간의 뇌는 모든 자극에 적응한다. 설령 그것이 행복이라 할지라도.
오늘의 "완벽한 행복"이 내일의 "평범한 일상"이 되거나, 심한 경우 실존적 우울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post-achievement depression이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중학생 때 심리학 공부한다고 봤던 내용이라 자세한 내용은 긴가민가하다.
나는 행복이 어떠한 상태가 아니라, 변화의 기울기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있을 때, 우리의 행동은 방향성을 갖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있고,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해 하루를 불살라 노력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인생의 최종 목표였던 행복의 기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음 질문과 마주한다.
"Now what?"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행복을 달성한 후 누구인가?
모든 과정이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목적 달성 후 과정은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등반을 끝마쳐 정상에 선 당신은 이제 내려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도달하지 못하면 영원한 불행이요, 도달하면 실존적 공허에 빠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것도 재미삼아 수학적으로 증명해볼까.
- 명제: H = G가 성립한다면, 의미(M) = 0이 된다.
- 증명
- 목표 지향적 삶에서, 의미 M = f(목표와의 거리, 진전도)
- 목표 달성 시, 거리 = 0, 진전의 여지 = 0
- 따라서 M = f(0, 0) = 0
- 의미의 부재는 실존적 공허를 초래하며, 공허는 불행의 한 형태이다.
- 따라서 H(달성 후) < H(추구 중)
9.
function 의미있는_삶() {
while (true) {
현재_순간 = 경험();
가치 = 발견(현재_순간);
행동 = 선택(가치에_부합하는_것);
실천(행동);
// 행복은 측정하지 않는다
}
}
초입에서 나는 행복을 기꺼이 버렸다고 했다.
굳이 불행을 찾아 나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순수하게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니었을 뿐이다.
덕분에 추상적인 행복을 측정해보겠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그저 내 삶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한 단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만을 좇는다.
돈과 인맥과 명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여유를 부리기 위한 부산물에 불과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와 성장과 기여와 같은 가치만이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직업과 인맥과 돈이 자연스레 따라 들어오는 지금 시점에서, 당장 조금 불편한 방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따위들로 인해 불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난 때때로 목표를 잊어버릴 만큼 순수하게 공부와 코딩을 좋아할 뿐이다.)
Viktor Frankl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Happiness cannot be pursued directly but must ensue as a side effect of having a meaningful life."
행복은 측정하려는 순간 경험에서 빠져나오고,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미래로 밀려나고, 도달하는 순간 공허해지며,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행해진다.
그렇다면 알고리즘 자체를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행복이라는 목표를 지워버리고, 가치라는 나침반을 따르는 것.
측정을 멈추고, 경험에 머무르는 것.
미래의 완성을 꿈꾸는 대신, 현재의 과정을 살아내는 것.
이렇게 되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던 변수가 아니라, 이미 실행 중이던 함수의 자연스러운 반환값이 된다.
10.
글을 다 쓰고 저장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AI에게 이 글을 반박하는 글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뭔가 의미를 이상하게 해석한 것도 있는 거 같은데, 충분히 일리가 있는 내용도 있는 것 같다.
이번 글은 감히 누굴 가르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머리도 식히고, 내 가치관을 한 번 환기시켜볼 겸 재미삼아 써본 글일 뿐이다.
이제 헛소리 그만하고 다시 공부하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