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ction Asia 2025 해커톤 후기

2025. 8. 26. 00:27·Review
1.

"취업을 하고 나면, 코딩에 대한 너의 열정도 남들처럼 식을 것이다"

 

조언인지, 저주인지 분간이 안 가는 저 말을 3년 넘게 질리도록 듣고 살아왔으나, 아직까지는 여전히 즐겁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정확히는 '평소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주네?'라는 느낌밖에 안 들어서 그런지,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게 회사와 팀 입장에서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만..

 

다만, 최근 들어 누구를 만나도 취업 상담이나 불경기 푸념을 실컷 들어주거나, 집, 결혼, 커리어 등은 어떻게 할 거냐는 많은 관심을 받고 살다보니 현타가 왔다.

나에게 꿈을 묻는 사람은 안 그래도 없었지만 점점 더 없어지고 있고, 사교를 위해 새롭게 만난 사람들조차 나의 열정이 곧 녹아내릴 것에 확신하는 모습밖에 보고 있질 못하고 있다.

집을 알아보겠답시고 약 2주 정도를 날려버린 탓에 공부할 시간을 날리는 것도 화가 나고, 배우고 싶은 건 점점 더 많아지는데 현실적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나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은 집을 구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평온한 삶을 즐기다, 어디 그럴 듯한 죽음을 맞이하려고 악착같이 몸을 갈아왔던가?'란 생각이 뇌리에 스친 이후부터, 집을 구하는 것조차 의미없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내가 굳이 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어차피 그런 거 끝도 없을 텐데, 딱히 그런 거에 인생을 바치고 싶진 않았다.

 

안다, 나도 내가 현실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없다는 것 정도는.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진 이 현실에 찌들어버릴 생각이 없었고, 다시 예전처럼 순수한 광기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나를 던져넣을 필요가 있었다.

 

마침 그런 시기에 비교적 최근까지 호흡을 맞추던 팀원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Junction Asia 2025에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한 가지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면, Junction Asia는 지원서 작성부터 모두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발표할 때도 영어를 사용하긴 하나, 현장에 있는 스태프 분들과 직접 대화할 때는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긴 하다.

 

팀원들은 프로젝트 발표를 내가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직 어디가서 영어로 발표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시간 제한만 없다면야 얼마든지 말을 절면서라도 내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프로젝트 발표는 아무래도 시간제한이라는 것이 있다보니 내 발화 속도로는 아직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도망치면 앞으로 다시는 영어로 발표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차게 말아먹고 동료들에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이 또한 경험이다' 마인드로 지원서를 썼다. (물론 동료들한테 미리 말은 했다.)

 

그런데 지원서가 어지간한 회사 지원 서류보다 길더라.

회사에서 쓰고 있었으면 이직 준비하냐고 오해했을 것 같다.

 

3.

해커톤 진행은 `25.08.23(금) 18시 ~ `25.08.25(일) 18시였다.

22일에 미리 본가로 내려와서 재택 근무를 하고,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을 찍고 차를 끌고 포항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2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입장이 불가한 건 아닐까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별 탈 없이 입장시켜주었다.

 

해커톤의 꽃. 굿즈.

굿즈 구성품에는 스티커, 수건, 티셔츠, 안경 닦이(?), 펜과 종이 정도가 들어있었다.

딱히 굿즈 모으는 취미는 없어서 뭘 주든 상관은 없었지만, 밤샘 작업한다고 하루 종일 입고 있어야 할 티셔츠가 흰색인 건 조금 아쉬웠다.

 

Junction Asia는 항상 주제를 던져주고, 그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된다.

이번에는 총 4가지 주제가 있었다.

  1. gyeongsangbuk-do_postech_microsoft: 최근 발생했던 대규모 산불 사태에 따른 AI 기반 산불 예방 시스템 개발
  2. upstage: upstage의 자체 LLM인 Solar Pro 2를 활용하여 AI Agent Workflow 개발. (이 외에 OCR 특화 LLM 같은 것도 있었다.)
  3. sankun: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여 건설 현장 안전 예방 혹은 대응 시스템 개발 (option이 총 3개라 사실상 '건설 현장 안전' 키워드가 핵심)
  4. ybm: 학습자 중심의 지속 가능한 AI 기반 영어 교육 컨텐츠 개발

 

우리 팀은 upstage 트랙을 골랐다.

AI Agent를 직접 개발해본 적이 없어서 우려스럽기는 했으나, 데이터 분석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거 같은 타 주제에서 강점을 취하기엔 우리 팀 스펙에선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Jetbrain 컨퍼런스에서 봤던 kotlin 2.2에 내장된 koog를 활용해서 AI Agent Workflow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참고로 2024년도 후기를 찾아보면 해커톤이 아니라 아이디어톤 같다는 평이 제법 있었는데, 이를 의식해서인지 평가 기준에 코드 퀄리티도 확인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이런...클로드 코드로 딸깍해서 전부 작성해버릴 생각이었는데...

 

4.

제 옆 테이블에는 아직 사람들 있어요.

첫째 날에는 새벽 2시 쯤에 거의 모든 팀들이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귀찮아서 숙소고 뭐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와버려서 돌아갈 장소따위 없었다. 😇 (2층에 휴식 공간이 있긴 했다만, 누우면 영원히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애플 아카데미 소속이었기에, 기숙사까지 태워주고 난 후 나는 다시 돌아와서 기획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전전날 본가로 내려오는 열차가 1시간 반이나 지연되어 새벽에 도착했던 탓에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임에도 첫 날은 밤을 모두 샜다. (두 번째 날에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무려 4시간이나 잤다.  졸음 운전 안 하고, 이 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혼자서 모든 기획을 세울 수는 없었기에 바로 개발을 착수할 수 있도록 환경 설정과 문서만 정리를 해두고, AI Agent Workflow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따로 공부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AI Agent를 만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부터 공부하고 있었다고 해야하려나?

 

---

 

두 번째 날은 거의 대부분 팀이 자리를 지켰다.

 

옛적에 알던 지인들을 마주치기도 하고, 개최지가 포항이라 그런지 애플 아카데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예전에 받았던 앱을 통해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안녕하세요, Logan. 실물을 보니 신기하네요"라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애플 아카데미 카르텔 뭔데)

 

예전 같았으면 무박 3일 같은 거 심심치 않게 했을 텐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11시 쯤 되니까 한 번 헤롱헤롱 거렸었다.

그런데 본인 체력을 파악하고 조절도 못하는 인간처럼 보이는 게 싫기도 했고, 백엔드가 나 뿐인데 정신 안 차리면 망할 거 같아서 이 악물고 버텼다. (그러다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뻗었다.)

 

이번 해커톤의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나 자신이였다.

2~3년 전에나 했을 법한 기초적인 실수를 남발하기도 하고,

나 포함 4명의 팀원 중 한 분은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현직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를 불편해하시진 않을까 염려되어 소극적으로 기획에 참여했다가 진도가 나가질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총대매고 나섰어야 했으려나.

 

최근에는 팔로워의 자세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보니 리더로서의 역량이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밸런스를 맞춘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5.

우여곡절 끝에 만든 그림 치료 AI Agent.

 

하지만 final도 가기 전에 광탈해버렸다. (머쓱)

final까지 가서 떨어졌으면 슬램덩크 짤이라도 올려서 드립칠 수 있었을 텐데, 유일하게 그걸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끝내 koog를 적용하는 것에 실패했다.

OpenAI를 연결하는 것이라면 쉽게 할 수 있었지만 Solar Pro 2.0은 내가 하나하나 세팅값을 다 넣어줘야 연결이 가능한 것 같았는데, 이걸 어찌저찌 해냈다 하더라도 workflow 구성을 위한 graph를 구성하기엔 내 kotlin 역량이 아직 미흡했다.

물론 시간을 더 투자했을 때 당연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까지 계산은 했으나,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팀원 전체에 피해를 주는 최악의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Java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번 프로젝트로 제법 얻은 것이 많았다.

AI Agent를 만들어보다가 생각만큼의 퀄리티 좋은 응답이 나오질 않아서 각 전문 분야 별 AI Agent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각각의 Agent들의 특징을 살려 사고·결정·행동 모든 것을 자동화 하기 위해 제법 많은 것들을 고민해봤다.

이런 workflow 구축해본다는 게 처음이라 엄청 막막했었는데, 하다보니까 LLM에게 tools를 왜 넘겨주는지, koog에서 조건 별로 다른 Agent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쉽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경험적으로 와닿았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이것저것 만져본 정도였는데, 오히려 해커톤이 끝난 지금이 이런 workflow를 구축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높아진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없어 해결해볼 시도는 못 했지만, LLM 비용 절감 방법과 응답 속도 향상을 위한 플로우 조정과 비동기 처리 같은 것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서 문제라면 문제다.

 

6.

마지막으로 Final에 진출한 팀들의 발표를 보고 있었는데, 산불 토픽 최종 진출 팀에서 데이터 분석해놓은 거 보고 해당 주제를 안 고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거나, 같은 트랙의 다른 AI Agent를 만든 사람들의 플젝을 봤을 때는 주어진 자원 내에서 문제를 잘 해결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실직고 하자면 그 때 조금 많이 피로가 쌓인 상태라 뭐라고들 말씀하셨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하지만 당시에 인상깊게 봤던 것은 사실이다.

 

뭐랄까, 정션 해커톤 후기라고 적어놓고 헛소리가 절반을 넘긴 거 같긴 한데, 애초에 해커톤 참여 목적이 우승이 아니었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모든 대회가 그렇듯, 누군가는 대회 상금을 노리고 임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순수하게 즐기러 왔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절실했기에 열심히 참여했을 것이다.

목적이 어찌되었든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쏟아 붇고, 또 이를 구현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다보니 초심을 어느정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진짜 많았다...나도 나름 회화 공부하는 곳에서 잘 한다고 칭찬받고 있는데, 타임 어택 걸리니까 뇌 사고 기능이 정지해버리던데. (그래도 발표하는데 눈 앞에 타이머 보여주는 건 좀 너무했다고 생각합니다. 😂)

고작 9개월 정도 바짝해놓고 그 정도 되길 바라는 게 너무 욕심이었으려나?

그런 부분에서도 자극을 엄청 받아서 본가에서 공부하던 IELTS 책을 죄다 들고 와버렸다.

진심 모드로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팀원들.

나는 우승에 욕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우승을 안겨주고 싶은 욕심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고, 마지막엔 피곤했던 건지, 내심 결과에 서운했던 건지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게 아직까지도 신경쓰이는 점이다.

 

그래도 다들 정말 수고 많았고, 제게 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영광이었습니다. 👏

저작자표시 비영리 (새창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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