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리고
살아 남은 자식만 키운다.
글을 좀 멋있게 시작해보고 써본 것 뿐이고 사실 그렇게 가혹한 환경은 아니다.
42 Seoul 본 과정에서 떨어지고 방황하다가 거기서 친해졌던 분께서 내게 이 동아리를 권유하셨다.
공부야 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자신이 있었지만, 갑자기 코딩을 시작하게 된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는 환경에서 고립한다는 생각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기에 일단 백엔트 파트로 무지성 신청을 넣었다.
(10기부터 Django가 아니라 DRF와 React, 디자인&기획 파트로 분리했다고 알고 있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전국 연합 동아리다 보니 학교 마다 운영 기구를 설치해서 진행하는데 면접까지 본다.
솔직히 이제 코딩 6개월 차였는데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신청서 넣어놓고 면접을 본 뒤에 '내가 떨어지면 인재를 알아보지 못 하는 수준의 동아리임에 틀림없다'라는 정신 세뇌를 무장하고 있었는데 합격 문자 뜨자마자 옆에 있던 친구를 끌어 안았었다.
뭐 여튼 학교 운영진에 따라 방침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 리뷰는 하나의 예시밖에 안 된다.
우리는 게더 타운에서 주로 매주 월요일마다 운영진들에게 정기 교육을 받고, 멋사에서 지원하는 강의를 시청하면서 공부했었다. 그리고 주마다 나타나는 과제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과제가 더 많고, 난이도가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가장 뒤쳐지는 사람을 기준으로 과제를 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동아리 형식의 장점은 각 학교마다 독자적으로 운영을 맡기다보니 시험기간 같은 때에 유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 시험기간 2주 전부터 시험이 끝난 주까지는 활동을 중단한다.
종강 직후였나 한 번 경북권 대학들만 모여서 해커톤을 진행했었는데 학교마다 운영 스타일이 엄청나게 다르다.
다른 학교 참가자 분들하고 얘기해보니 OT 이후로 서로 한 번도 이야기 해보지 않았다는 곳도 있었고, 심지어 같은 팀 얼굴을 해커톤에서 처음 알게 됐다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종강하고 뒷풀이 예정이 따로 없다는 동아리 운영에 충격먹고 내가 술모임을 만들었는데 ㅎㅎ
이 동아리에 처음 들어온 이유는 어차피 협력과 정보 교류가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백엔드 파트로 지원했지만 사실상 프론트 엔드 과제까지 다 풀고 혼자 공부했었다.
현재 수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DRF 관련 공부는 끝마쳤다고 생각해서 지루해지다 보니 호기심에 리액트까지 손 댔었던 게 가장 큰 이유긴 하지만.
다만 경북 해커톤 때는 아직 실력이 부족했었던 탓에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 하고 그냥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었다.
동아리에 내향형 인간이 워낙 많아서 MT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동아리 회장님이 외향형 인간이라 이걸 또 어떻게 성사시켜서 MT도 갔었다.
내가 이 때 처음으로 I형의 광기를 맛봤는데, 낮에 가면 덥다고 밤 새서 버티다가 새벽 6시 반 쯤에 나감.
멋사의 사실상 최종 목표라 볼 수 있는 중앙 해커톤은 여름 방학 기간에 열린다. 밤샘 코딩으로 건강을 획기적으로 망칠 수 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았는데, 학교 강당 건물을 빌려서 했었다.
우리 때는 예산 문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해커톤 시간 자체도 너무 단축되고, 그 와중에 앞에서 틈만 나면 마이크로 해설하고 레크레이션이라고 소리지르고 하는데 엄청 화났었다.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더워 죽을 뻔.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사람들하고 밤새서 작업하고, 공동의 목표를 주체적으로 세워서 구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TOP5 안에 들지는 못 했지만 경험 자체에 만족한다. (물론, 그 때 끝내지 못 한 구현은 혼자서 하는 중.)
중앙 해커톤이 끝나면 동아리는 더이상 제 구실을 하지 않는다.
알고보니 이 과정을 다 거치면 "여러분들은 이제 아기사자가 아니라 세렝게티의 야생 사자 입니다."라더라.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해커톤에서 끝내지 못 한 구현 작업을 마무리 하던가, 스터디를 운영하던가 각자의 선택에 달린다.
그래서 나는 Java, C++ 알고리즘 멘토, SpringBoot 스터디, Unity 스터디를 만들어서 하는데, 운영진 보다 운영 많이 한다고 다들 웃음.
최종 소감을 적어보자면, 내가 제일 뒤쳐질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ENTJ다 보니, 오히려 그런 환경이었다면 난 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성취를 이뤄냈을 테지만 그렇다고 활동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많았고, 세상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특히, 굳이 컴퓨터 전공을 이수할 필요는 없다고 굳게 생각하던 내가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의 CS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오만함과 자만심을 꺾어버려 더 성장하도록 의욕을 돋구기 위해서는 고립해선 안 된다.
항상 주위에 나보다 능력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주위의 사람들을 성장시켜 내게 도전하도록 만들고,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이 동아리에 들었고, 충분히 만족했다.
이제 또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 지 찾으러 다녀야겠다.
+)
내년에 만약 같이 할 사람을 구하게 되서 운영진을 하게 된다면,
나의 과잉 열정으로 아기 사자들이 좀 힘들어지려나